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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119sh.info
● 고대·중세 日 심장부에서 한류 조상 소환되다● 이재명 대통령, 다카이치 총리 나란히 축사● “와앗소 와앗소” 외침과 함께 시작된 퍼레이드● “고대로부터 교류에서 배우는 행사”● 재일동포에게 용기 주기 위해 기획● 왔소, 세월을 초월한 환대의 마음 전하다
매년 11월 첫째 일요일이면 일본 오사카 나니와 궁터에서는 ‘사천왕사 왔소’ 축제가 열린다. 사진은 행사의 한 장면. 오사카=허문명 기자
임진왜란의 원흉 신천지릴게임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1537~1598)는 일본에서는 전국시대 일본을 통일한 영웅으로 통한다. 그가 세운 오사카성은 도시의 상징물이자 일본 역사 전체를 압축한 건축물이기도 하다. 성은 도요토미 가문이 패망하면서 불타고 무너졌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다시 지으며 에도막부 시대를 연다. 그런 점에서 오사카성과 그 주변은 '전국시대의 종말'과 '에도시대의 릴게임사이트추천 시작'을 알리는 역사의 전환점이 되는 장소다.
11월 초 찾은 오사카성은 온통 가을빛으로 덮여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함께 모여 운동하는 고령자들, 천천히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 성 주위를 가볍게 뛰는 젊은이들까지 다양한 이들이 성 주변에 모여 저마다의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답게, 릴게임꽁머니 봄에는 벚꽃 축제와 마라톤이, 여름에는 각종 음악 공연이 열린다고 한다.
고대·중세 日 심장부에서 만나는 한류의 조상들성을 나와 10여 분 쯤 걷다 보면 '나니와(難波) 궁터'라는 생소한 이름의 넓은 평야가 나온다. 오사카성이 중세 일본의 심장부였다면 이곳은 고대(7세기)의 심장부였다. 나니와라는 말 자체가 '오사카' 릴게임모바일 의 옛말이다. 나니와는 중국, 백제, 신라 등과 외교·무역을 하던 국제 항구도시였다. 일본 고대 역사서 '일본서기'는 "652년 고토쿠 천황이 수도를 나니와로 옮겨 궁전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고토쿠 천황은 646년 '다이카 개신(大化 改新)'을 통해 천황 중심의 율령제 국가의 틀을 갖추도록 일본 최초의 행정 개혁을 바다신게임 한 사람이다. 이 선언이 발표된 곳이 바로 나니와궁이다.
지금은 찬란했던 역사의 흔적이 모두 사라지고, 잔디밭과 나무로만 채워진 넓은 터가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매년 11월 첫째 일요일이 되면 이곳은 고대 일본의 화려한 축제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문명과 문화를 전한 도래인(渡來人)들의 행렬을 재현하는 '사천왕사 왔소' 축제가 성대하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 특별한 행사는 1400년 전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온, 한류의 조상들을 한명 한명 무대로 불러낸다. 그리고 일본 황실의 환대를 받던 그날의 장면을 다시금 재현한다.
11월 첫째 일요일이었던 2일 오전 일찍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돌에 일본어로 '나니와 궁터'라고 쓰인 입구부터 '四天王寺ワッソ(사천왕사 왔소) since 1990'라고 적힌 노란색 깃발이 대거 나부끼고 있었다. 피리 소리와 북소리는 물론 꽹과리, 징 등 일본에서는 듣기 힘든 사물놀이 소리가 요란했다. '아리랑' 음계도 들렸다.
광장 왼쪽에는 떡볶이, 김밥, 부침개 등 한국 음식을 즉석에서 만들어 파는 좌판이 펼쳐져 있었다. 중심 쪽으로 가니 중학생으로 보이는 일본 청소년들이 K-팝 댄스 연습을 하고 있었다. 10~20대부터 중장년과 노년층까지 햇빛 좋은 가을 하늘 아래 열리는 축제를 즐기러 나온 듯했다.
‘四天王寺ワッソ'라고 적힌 옷을 걸친 스태프들이 곳곳에서 팸플릿과 생수, 햇빛 가리개를 나눠주고 있었다. 조용히 움직이며 세심하게 관람객들을 챙기고 안내하는 모습에서 35년 동안 축제를 치러온 주최 측의 내공이 느껴졌다. 방송국과 취재기자들도 진을 치고 있었는데, 이는 행사가 단순한 마을 축제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오전 11시가 되자 일본 청소년들이 대거 무대에 올라서더니 한국의 북청 사자놀음 공연을 펼쳤다. 관중석에서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아마추어 수준이 아닌 프로급의 고난도 기예를 이어갔다. '저런 걸 어디서 배웠을까' 궁금증이 일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재일동포 학생들이 다니는 백두학원 건국학교 전통무예반 단원들이라고 한다.
이들의 공연이 끝나자 무대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에 일본어로 된 시가 떴다. 일본에 한자를 전한 백제 왕인박사의 시였다. "꽃이 피니 겨울이 지난다. 봄이 피기 시작한다"는 시구가 축제의 취지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었다.
인근 고등학교 학생들의 일본 전통춤 공연이 다시 펼쳐졌고 이어서 30~40대 한국인과 일본인 30여 명이 무대에 올랐다. 이들은 올해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해 한국 외교부가 기획한 '자전거 신(新) 조선통신사'들이다. 10월 27일 자전거를 타고 서울에서 출발해 부산을 거쳐 후쿠오카, 도쿄까지 이어지는 여정을 이어가고 있었다. 과거 조선통신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일정으로, 여정 중 오사카에 들러 이번 축제에 함께하게 됐다고 했다.
일본 오사카 도심에서 35년 동안 이어진 ‘왔소’ 축제는 1400여 년 전 한반도 삼국시대 옷을 입은 도래인들이 한국 전통음악을 연주 및 입장하며 진행된다. 오사카=허문명 기자
이재명 대통령, 다카이치 日 총리 나란히 축사축제의 본격적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은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축사였다. 대독으로 전해진 두 정상의 메시지는 축제에 무게감을 더했다. 한일 정상들은 이번뿐 아니라 역대 행사에도 항상 축사를 냈다. 민간이 주최하는 한일 교류 축제에 양국 정상이 꾸준히 메시지를 내는 것은 이 축제가 사실상 유일하다고 한다.
먼저 이 대통령의 메시지가 한국어로 울려 퍼졌다.
"서른다섯 번째 '사천왕사 왔소 2025' 개최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한국과 일본이 수교를 맺은 이후 한일 관계는 활발한 인적 교류를 바탕으로 크게 발전했습니다. 이 중심에는 문화 교류의 핵심 거점인 오사카가 있습니다. 백제의 왕인박사가 전한 학문과 문화, 조선통신사가 전한 평화의 마음, 그리고 사천왕사 왔소가 이어온 교류의 정신이 바로 이곳, 오사카에서 계승됐습니다…며칠 전 한국의 천년 고도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고대 일본의 수도인 나라 출신의 다카이치 총리와 첫 회담을 가졌습니다. 1500년에 걸친 한일 양국의 교류 역사를 되새기며 신뢰와 공감의 토대를 쌓을 수 있는 소중한 자리였습니다. '사천왕사 왔소 2025'를 통해 한일 양국의 변함없는 우정과 협력이 앞으로 더욱 굳건하길 바랍니다."
이 대통령 축사는 실시간으로 일본어로 번역돼 대형 스크린에 자막으로 옮겨졌다. 이어 다카이치 총리의 메시지가 화답하듯 스크린에 한글로 떴다.
"저 또한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 경주를 방문해 이 대통령과 양국 관계를 미래지향적이며 안정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의견을 같이했습니다. 올해 사천왕사 왔소는 '고대의 교류로부터 배우는 것'을 주제로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축제를 계기로 고대로부터 이어져 현대에 숨 쉬는 양국의 풀뿌리 교류로부터 많은 배움을 얻는 것과 동시에 교류가 더욱 발전할 것을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사천왕사 왔소는 이러한 교류의 역사와 평화,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염원을 생생하게 되살려 주는 더없이 값진 행사입니다. 관계자 여러분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사천왕사 왔소는 삼국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가 불교와 한자, 건축 기술을 전해준 학자와 기술자는 물론 이를 후원한 각국 왕과 당시 왜를 통치한 천황들을 기리는 자리다. 주최 측은 '일본서기' '고사기'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 80여 명을 추린 후 시대 상황에 맞게 의상과 분장을 갖춰 재현한다. 이들이 한국의 고대 전통음악을 배경으로 무대를 걸으면서 관람객에게 일일이 소개하는 것이 주내용이다. 중앙 무대가 마련된 곳은 나니와궁의 본채인 대극전 자리로, 과거 천황이 사절들을 영접하는 장소였다.
‘왔소'라는 축제명은 '(이곳에) 잘 왔소'라는 순한국말에서 따온 것이다. 왔소 앞에 붙은 '사천왕사'는 코로나19 팬데믹 전까지 치러졌던 축제의 출발점이 된 사찰 '시텐노지'의 한국식 표기다. 시텐노지는 이곳 나니와 궁터에서 3㎞가량 떨어진 곳으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관영, 즉 국가가 세운 최초의 사찰이다. 창건자는 일본 고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쇼토쿠 태자(聖德太子·574~622)다.
"와앗소 와앗소" 외침과 함께 시작된 퍼레이드
통일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로 분한 등장인물. 주최 측의 세심한 고증을 통해 완성된 복장을 입고 있다. 오사카=허문명 기자
원래 행사는 시텐노지에서 출발하는 거리 퍼레이드였지만 지금은 나니와 궁터에 무대를 따로 마련해 광장에서 모여 즐기는 것으로 바뀌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제는 '사천왕사 왔소'가 아니라 '나니와궁터 왔소'이지만 주최 측은 오랫동안 써온 이름이라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장소가 바뀌었지만 "한일 고대 인물들을 불러내 환대하고 감사하는 우정의 축제를 만들겠다"는 본연의 취지는 바뀌지 않았다.
이날 행사는 3~7세기를 세 시대로 나눠 진행됐다. 선두가 일제히 "와앗소 와앗소"를 외치면 뒤따르는 인물들이 죽 일렬로 서서 무대를 향해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식으로 진행됐다.
자막에 "평화의 시대"라는 일본어 자막이 뜨자 맨 앞에 왜(倭)·고구려·신라·백제 등 나라 이름이 적힌 깃발이 지나갔고, 이어 각종 고대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각자의 이름이 크게 적힌 깃발 뒤에서 걸으며 관객들과 일일이 눈인사를 했다. 이들이 나올 때마다 사회자의 배경 설명이 이어졌다.
"삼국시대 고구려에는 광개토대왕, 장수왕 등 정복 군주들이 두드러졌습니다. 백제에는 근초고왕, 무령왕, 성왕 등 중흥기를 이끈 왕들이 보입니다. 신라는 선덕여왕, 지증왕, 진흥왕 등 국가 기틀을 다지고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행렬에는 당시 왜(倭)를 이끌던 주역들도 포함됐다.
"후지와키 아쓰코는 법흥 천황의 동생이었습니다. 독서를 좋아했으며, 구다라(백제)의 학자들을 불러들여 수도를 정비했습니다. 닌토쿠(仁徳) 천황은 16대 천황입니다. 덕이 매우 높은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 나니와 일대 치수 사업도 했습니다."
이어서 삼국시대 한반도에서 건너온 우리 조상들에 대한 자세한 소개가 이어졌다.
"구마 스님은 아스카시대의 인물로 도래계 야마토의 아우치 일족 출신이라 합니다. 신라 사신으로 파견돼 김춘추를 수행하는 등 국제 외교 무대에서 활약했습니다. 백제 학자 와니(王仁)는 오진 천황의 초청으로 일본으로 건너와 '논어'와 '천자문'을 전해주며 일본의 문필 행정을 담당했습니다. 나라시대 학자 요기는 와니 박사의 후손이라고 전해집니다. 그는 오진 천황 시대에 백제에서 많은 기술자를 이끌고 건너와 일본의 선진기술 보급에 힘썼습니다."
관람객들 역시 귀를 쫑긋 세우고 광장에 울려 퍼지는 사회자의 설명을 들었다. 한국인들조차 이름도 가물가물한 삼국시대의 왕과 학자, 장인의 이름이 일본 오사카 한가운데서 불리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축제를 보고 있자니 마치 한일 고대사 공부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날 주인공 역할을 맡은 이들 중에는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연예인도 있었다. 고대 닌토쿠 천황 역할을 맡은 코미디언 아오시바 후쿠 씨가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일본에서 1960~70년대 인기를 끌었던 개그 프로그램 '만화 트리오(漫画トリオ·Manga Trio)'의 한 명으로 코미디언이자 탤런트다. 아오시바 씨는 "일본에서 존경받는 닌토쿠 천황 역할을 맡아 너무 영광스럽다"며 무대인사를 했다.
일본에 문화와 문명을 전한 한반도 삼국시대 왕과 학자, 기술자들이 각자 이름이 적힌 팻말과 함께 무대 앞으로 걸어나오고 있다. 오사카=허문명 기자
고대로부터 교류에서 배우는 행사첫 번째 그룹이 무대인사를 마치고 내려가자 이내 두 번째 그룹이 "와앗소 와앗소" 하는 구령과 함께 광장으로 들어섰다. 백제 학자 아직기, 주역을 비롯해 5경을 전해준 단양이, 일본 국악이라고 할 수 있는 무악의 원조를 전수해 준 음악무용가 미마지, 나라 아스카 대불을 건립할 때 황금 300량을 주는 등 왜와 우호 관계에 힘썼던 고구려 대흥왕이 차례대로 소개됐다.
1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퍼레이드가 끝났고, 마침내 일본 황실의 환영 인사를 상징하는 대망의 피날레를 맞았다. 그 주인공은 앞서 언급한 쇼토쿠 태자였다. 그는 일본 국가 체제의 기초를 세운 사상가이자 정치가다. 불법(佛法)을 통치 이념으로 삼은 인물로 일본에서는 '성인(聖人)'으로 추앙된다. 한때(1957~1986) 100엔 지폐의 얼굴을 장식했을 만큼 일본 역사에서 차지하는 상징성도 크다.
그는 한반도와 인연이 깊다. 백제 승려 혜총이 그의 스승이었으며 고구려 승려 혜자도 그에게 큰 영향을 줬다. 매년 축제에서 태자의 역할은 오피니언 리더 가운데 한 명이 맡는다. 올해는 한국의 민속과 풍습을 일본에 널리 알린 공로로 한국에서 훈장도 받은 적이 있는 민속학자 아사쿠라 도시오 오사카민속박물관 명예교수가 그 역할을 맡았다. 그는 주황 빛깔의 화려한 의상을 입고 수염까지 붙인 채 무대에 섰다. 마치 옛날 천황이 사절단에게 깊은 환대를 하듯 깊이 고개 숙여 인사하더니 감사와 환영의 메시지를 던졌다.
"쇼토쿠 태자는 바다를 건너온 (한반도) 도래인들을 소중히 여겨 그들이 가져온 제도와 기술, 불교를 일본에 전파했습니다. 아득히 바다를 건너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한반도, 중국의 위대한 사람들이 이곳 오사카 나니와의 항구를 방문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웅대한 역사적 그림을 전개하는 것이 바로 사천왕사 왔소입니다. 1400여 년 전 그들로부터 (올해 축제가 내세운) 테마인 '고대로부터 교류에서 배우는 것'을 확인하는 행사였기를 기대합니다."
재일동포에게 용기 주기 위해 기획
‘왔소’ 축제에서 K-팝 그룹 ‘에이머스’가 공연을 하고 있다. 오사카=허문명 기자
1시간 반가량 걸린 1부 주요 행사가 끝나자 일본 중고교생들이 펼치는 전통춤 공연이 이어졌다. 이날 행사 관람객은 얼추 1000여 명은 돼 보였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즐겨 장내가 조금 흐트러졌다고 느낀 순간, 젊은이들이 갑자기 무대로 뛰어오르자 관람객들의 눈과 귀가 일제히 쏠렸다. 관객석에 있던 20대 젊은 일본 여성들은 "꺄아악" 탄성을 지르며 일제히 휴대폰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온 K-팝 그룹 '에이머스'의 공연이었다.
이들의 현란한 군무와 강렬한 열창이 이어지자 관중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왕인박사를 비롯해 행사장에서 환생한 도래인들이 하늘에서 이 장면을 내려다본다면 흐뭇하겠다는 생각에 미소가 절로 배어 나왔다.
‘왔소'는 누가, 언제, 어떻게 기획해 시작했을까. 주인공은 15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재일동포 민족 금융기관 '오사카흥운'을 세워 오사카 금융인으로 성공한 고(故) 이희건 회장과 그의 장남 이승재 부회장이다. 이 회장은 1982년 재일동포 주주들을 주축으로 신한은행을 한국에 세웠다.
축제는 본래 "일본 땅에서 멸시와 차별을 받고 살던 재일동포들이 용기를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한반도에서 건너온 도래인들이 일본이라는 나라의 기틀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려주겠다"는 취지로 출발한 행사였다. 그 뜻에 동의한 재일동포들이 십시일반으로 참여해 초기 자금 25억 엔을 모았다고 한다. 사실 도래인과 재일동포는 고향을 떠난 배경과 시대는 다르지만, 망국이나 전쟁의 아픔을 안고 제2의 고향으로 일본을 택한 점에서는 같다. 그런 점에서 '왔소'는 신(新)도래인들이 선조를 기억하는 행사라고도 할 수 있다.
축제를 직접 보고 느낀 사실이지만, 행렬 속 인물 의상이나 배경음악 선정도 매우 신중하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축제를 기획하고 준비할 당시 오사카흥운은 내부 직원들로 아예 전담 팀을 만들고, 역사 고증을 위해 김원룡 서울대 명예교수와 우에다 마사아키 교토대학 명예교수 등 최고의 한일 전문가들 자문도 받았다고 한다. 또한 '삼국사기' '일본서기' '고사기' 등 한일 역사서를 통독하고 삼국시대 음악과 춤을 재현하기 위해 서울로 가 대금과 태평소 등 전통악기까지 배웠다고 한다. 분장에 사용되는 장신구와 모자 역시 모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졌다.
축제가 열리기까지 넘어야 할 장벽도 많았다. 전례 없던 행사여서 일본 경찰의 허가를 받는 데만 2년가량 걸렸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열린 1회 행사가 크게 성공하면서 모든 고생을 보상받았다. 왔소 축제를 기록한 책 '한류축제의 재발견 왔소'는 이렇게 전한다.
"1990년 8월 19일 사천왕사로 향하는 3600명의 화려한 의상의 거대 행렬이 오사카 시민들 눈을 사로잡았다. 수십만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 말 '와앗소 와앗소'가 오사카 대로에 울려 퍼졌다. 일본 언론들은 연도에 수십만 명의 관람객들로 가득 찼다고 보도했다…거리 퍼레이드 구간인 우에혼마치에서 사천왕사까지 1.6km를 진행하는 이 퍼레이드를 보러 연도에 나온 관객이 무려 46만 명이었다. 참가자는 물론 한국인, 일본인 구분 없이 관중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여태까지 볼 수 없었던 역사 현장의 재현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일본인에게는 한국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만드는 '살아있는 역사교육의 현장'이기도 했다."
당시 오사카 마이니치방송이 퍼레이드 현장에 500m 단위로 스피커를 설치해 마치 야구 경기 중계를 하듯 생중계를 했다고 한다.
책에 소개된 일본 고대 아스카시대 연구자인 이노쿠마 가네카즈 오사카왔소 문화교류협회 이사장은 "첫 행사 때 재일동포 노부인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온갖 멸시를 받던 일본 땅에서 한반도의 춤과 음악이 펼쳐지는 것만으로도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 부인을 보면서 왔소 축제는 계속 계승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술회했다.
35년간 행사가 이어지기까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1990년대 말 버블 경제 붕괴로 금융사에 대한 관리감독이 강화되자 오사카흥운이 파산 위기에 처하면서 행사도 직격탄을 맞았다. 행사는 고사하고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제작한 각종 의상과 물품까지 폐기 처분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 것이다. 그때 나타난 귀인이 이우에 사토시 전 산요 회장이었다.
이승재 부회장과 인연이 있었던 이우에 전 회장은 평소 한일 교류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왔소 같은 문화적으로 중요한 행사가 중단돼서는 안 된다"며 축제 비품을 보관할 장소로 오사카 산요전기창고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한일 우호 관계에 관심이 많았던 그에 대한 이야기는 앞서 '신동아' 8월호(삼성에 앞섰던 산요 회장의 한마디 "우리가 진 이유를 알겠다")에 소개한 바 있다.
세월을 초월한 환대의 마음 전하다오사카흥운이 안타깝게 문을 닫은 이후 축제가 잠시 멈췄지만, 흩어졌던 퇴직직원들이 하나둘 뭉치면서 행사는 '사천왕사 시절'을 마감하고 '나니와 궁터'에서 부활했다. 축제는 2011년 산요전기가 파나소닉으로 넘어가면서 또다시 위기를 맞았지만 이우에 전 회장의 노력으로 파나소닉이 지원을 결정했고, 이희건한일교류재단·신한금융그룹·신한은행 일본 현지법인 SBJ은행 등이 나서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희건한일교류재단은 이 회장이 2008년 자신이 가진 신한은행 주식과 예금 전액을 출연해 만든 재단으로, 왔소 축제 등 한일 양국의 우호를 증진하는 다양한 사업을 후원하고 있다.
축제가 끝나고 해가 지고 있었다. 나니와 궁터의 잔디 위로도 노을이 스며들었다. 천년을 건너온 이름과 얼굴은 하나둘 자리를 떠났지만, 그들이 남긴 우정의 온기는 바람결에 오래 머물렀다. 백제에서 건너와 불교를 전하고, 기술을 나누며, 문화를 심었던 사람들…. 그들이 놓은 길 위에서 2025년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이 사물놀이와 K-팝으로 서로 함께 우정을 나누었다.
그 옛날 "(일본에 잘) 왔소"라는 따뜻한 한마디 안에는 세월을 초월한 환대의 마음이 있었다. 한일 양국의 고대인들이 "잘 왔소. 그리고 잘 가시오"라고 했던 것처럼 1400년을 넘어 이어진 인연은 여전히 우리 곁에서 새로운 봄을 준비하고 있었다. 축제가 내건 슬로건 '우정은 1400년 전 저편에서부터' 말이다.
오사카=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매년 11월 첫째 일요일이면 일본 오사카 나니와 궁터에서는 ‘사천왕사 왔소’ 축제가 열린다. 사진은 행사의 한 장면. 오사카=허문명 기자
임진왜란의 원흉 신천지릴게임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1537~1598)는 일본에서는 전국시대 일본을 통일한 영웅으로 통한다. 그가 세운 오사카성은 도시의 상징물이자 일본 역사 전체를 압축한 건축물이기도 하다. 성은 도요토미 가문이 패망하면서 불타고 무너졌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다시 지으며 에도막부 시대를 연다. 그런 점에서 오사카성과 그 주변은 '전국시대의 종말'과 '에도시대의 릴게임사이트추천 시작'을 알리는 역사의 전환점이 되는 장소다.
11월 초 찾은 오사카성은 온통 가을빛으로 덮여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함께 모여 운동하는 고령자들, 천천히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 성 주위를 가볍게 뛰는 젊은이들까지 다양한 이들이 성 주변에 모여 저마다의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답게, 릴게임꽁머니 봄에는 벚꽃 축제와 마라톤이, 여름에는 각종 음악 공연이 열린다고 한다.
고대·중세 日 심장부에서 만나는 한류의 조상들성을 나와 10여 분 쯤 걷다 보면 '나니와(難波) 궁터'라는 생소한 이름의 넓은 평야가 나온다. 오사카성이 중세 일본의 심장부였다면 이곳은 고대(7세기)의 심장부였다. 나니와라는 말 자체가 '오사카' 릴게임모바일 의 옛말이다. 나니와는 중국, 백제, 신라 등과 외교·무역을 하던 국제 항구도시였다. 일본 고대 역사서 '일본서기'는 "652년 고토쿠 천황이 수도를 나니와로 옮겨 궁전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고토쿠 천황은 646년 '다이카 개신(大化 改新)'을 통해 천황 중심의 율령제 국가의 틀을 갖추도록 일본 최초의 행정 개혁을 바다신게임 한 사람이다. 이 선언이 발표된 곳이 바로 나니와궁이다.
지금은 찬란했던 역사의 흔적이 모두 사라지고, 잔디밭과 나무로만 채워진 넓은 터가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매년 11월 첫째 일요일이 되면 이곳은 고대 일본의 화려한 축제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문명과 문화를 전한 도래인(渡來人)들의 행렬을 재현하는 '사천왕사 왔소' 축제가 성대하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 특별한 행사는 1400년 전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온, 한류의 조상들을 한명 한명 무대로 불러낸다. 그리고 일본 황실의 환대를 받던 그날의 장면을 다시금 재현한다.
11월 첫째 일요일이었던 2일 오전 일찍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돌에 일본어로 '나니와 궁터'라고 쓰인 입구부터 '四天王寺ワッソ(사천왕사 왔소) since 1990'라고 적힌 노란색 깃발이 대거 나부끼고 있었다. 피리 소리와 북소리는 물론 꽹과리, 징 등 일본에서는 듣기 힘든 사물놀이 소리가 요란했다. '아리랑' 음계도 들렸다.
광장 왼쪽에는 떡볶이, 김밥, 부침개 등 한국 음식을 즉석에서 만들어 파는 좌판이 펼쳐져 있었다. 중심 쪽으로 가니 중학생으로 보이는 일본 청소년들이 K-팝 댄스 연습을 하고 있었다. 10~20대부터 중장년과 노년층까지 햇빛 좋은 가을 하늘 아래 열리는 축제를 즐기러 나온 듯했다.
‘四天王寺ワッソ'라고 적힌 옷을 걸친 스태프들이 곳곳에서 팸플릿과 생수, 햇빛 가리개를 나눠주고 있었다. 조용히 움직이며 세심하게 관람객들을 챙기고 안내하는 모습에서 35년 동안 축제를 치러온 주최 측의 내공이 느껴졌다. 방송국과 취재기자들도 진을 치고 있었는데, 이는 행사가 단순한 마을 축제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오전 11시가 되자 일본 청소년들이 대거 무대에 올라서더니 한국의 북청 사자놀음 공연을 펼쳤다. 관중석에서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아마추어 수준이 아닌 프로급의 고난도 기예를 이어갔다. '저런 걸 어디서 배웠을까' 궁금증이 일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재일동포 학생들이 다니는 백두학원 건국학교 전통무예반 단원들이라고 한다.
이들의 공연이 끝나자 무대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에 일본어로 된 시가 떴다. 일본에 한자를 전한 백제 왕인박사의 시였다. "꽃이 피니 겨울이 지난다. 봄이 피기 시작한다"는 시구가 축제의 취지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었다.
인근 고등학교 학생들의 일본 전통춤 공연이 다시 펼쳐졌고 이어서 30~40대 한국인과 일본인 30여 명이 무대에 올랐다. 이들은 올해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해 한국 외교부가 기획한 '자전거 신(新) 조선통신사'들이다. 10월 27일 자전거를 타고 서울에서 출발해 부산을 거쳐 후쿠오카, 도쿄까지 이어지는 여정을 이어가고 있었다. 과거 조선통신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일정으로, 여정 중 오사카에 들러 이번 축제에 함께하게 됐다고 했다.
일본 오사카 도심에서 35년 동안 이어진 ‘왔소’ 축제는 1400여 년 전 한반도 삼국시대 옷을 입은 도래인들이 한국 전통음악을 연주 및 입장하며 진행된다. 오사카=허문명 기자
이재명 대통령, 다카이치 日 총리 나란히 축사축제의 본격적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은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축사였다. 대독으로 전해진 두 정상의 메시지는 축제에 무게감을 더했다. 한일 정상들은 이번뿐 아니라 역대 행사에도 항상 축사를 냈다. 민간이 주최하는 한일 교류 축제에 양국 정상이 꾸준히 메시지를 내는 것은 이 축제가 사실상 유일하다고 한다.
먼저 이 대통령의 메시지가 한국어로 울려 퍼졌다.
"서른다섯 번째 '사천왕사 왔소 2025' 개최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한국과 일본이 수교를 맺은 이후 한일 관계는 활발한 인적 교류를 바탕으로 크게 발전했습니다. 이 중심에는 문화 교류의 핵심 거점인 오사카가 있습니다. 백제의 왕인박사가 전한 학문과 문화, 조선통신사가 전한 평화의 마음, 그리고 사천왕사 왔소가 이어온 교류의 정신이 바로 이곳, 오사카에서 계승됐습니다…며칠 전 한국의 천년 고도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고대 일본의 수도인 나라 출신의 다카이치 총리와 첫 회담을 가졌습니다. 1500년에 걸친 한일 양국의 교류 역사를 되새기며 신뢰와 공감의 토대를 쌓을 수 있는 소중한 자리였습니다. '사천왕사 왔소 2025'를 통해 한일 양국의 변함없는 우정과 협력이 앞으로 더욱 굳건하길 바랍니다."
이 대통령 축사는 실시간으로 일본어로 번역돼 대형 스크린에 자막으로 옮겨졌다. 이어 다카이치 총리의 메시지가 화답하듯 스크린에 한글로 떴다.
"저 또한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 경주를 방문해 이 대통령과 양국 관계를 미래지향적이며 안정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의견을 같이했습니다. 올해 사천왕사 왔소는 '고대의 교류로부터 배우는 것'을 주제로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축제를 계기로 고대로부터 이어져 현대에 숨 쉬는 양국의 풀뿌리 교류로부터 많은 배움을 얻는 것과 동시에 교류가 더욱 발전할 것을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사천왕사 왔소는 이러한 교류의 역사와 평화,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염원을 생생하게 되살려 주는 더없이 값진 행사입니다. 관계자 여러분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사천왕사 왔소는 삼국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가 불교와 한자, 건축 기술을 전해준 학자와 기술자는 물론 이를 후원한 각국 왕과 당시 왜를 통치한 천황들을 기리는 자리다. 주최 측은 '일본서기' '고사기'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 80여 명을 추린 후 시대 상황에 맞게 의상과 분장을 갖춰 재현한다. 이들이 한국의 고대 전통음악을 배경으로 무대를 걸으면서 관람객에게 일일이 소개하는 것이 주내용이다. 중앙 무대가 마련된 곳은 나니와궁의 본채인 대극전 자리로, 과거 천황이 사절들을 영접하는 장소였다.
‘왔소'라는 축제명은 '(이곳에) 잘 왔소'라는 순한국말에서 따온 것이다. 왔소 앞에 붙은 '사천왕사'는 코로나19 팬데믹 전까지 치러졌던 축제의 출발점이 된 사찰 '시텐노지'의 한국식 표기다. 시텐노지는 이곳 나니와 궁터에서 3㎞가량 떨어진 곳으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관영, 즉 국가가 세운 최초의 사찰이다. 창건자는 일본 고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쇼토쿠 태자(聖德太子·574~622)다.
"와앗소 와앗소" 외침과 함께 시작된 퍼레이드
통일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로 분한 등장인물. 주최 측의 세심한 고증을 통해 완성된 복장을 입고 있다. 오사카=허문명 기자
원래 행사는 시텐노지에서 출발하는 거리 퍼레이드였지만 지금은 나니와 궁터에 무대를 따로 마련해 광장에서 모여 즐기는 것으로 바뀌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제는 '사천왕사 왔소'가 아니라 '나니와궁터 왔소'이지만 주최 측은 오랫동안 써온 이름이라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장소가 바뀌었지만 "한일 고대 인물들을 불러내 환대하고 감사하는 우정의 축제를 만들겠다"는 본연의 취지는 바뀌지 않았다.
이날 행사는 3~7세기를 세 시대로 나눠 진행됐다. 선두가 일제히 "와앗소 와앗소"를 외치면 뒤따르는 인물들이 죽 일렬로 서서 무대를 향해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식으로 진행됐다.
자막에 "평화의 시대"라는 일본어 자막이 뜨자 맨 앞에 왜(倭)·고구려·신라·백제 등 나라 이름이 적힌 깃발이 지나갔고, 이어 각종 고대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각자의 이름이 크게 적힌 깃발 뒤에서 걸으며 관객들과 일일이 눈인사를 했다. 이들이 나올 때마다 사회자의 배경 설명이 이어졌다.
"삼국시대 고구려에는 광개토대왕, 장수왕 등 정복 군주들이 두드러졌습니다. 백제에는 근초고왕, 무령왕, 성왕 등 중흥기를 이끈 왕들이 보입니다. 신라는 선덕여왕, 지증왕, 진흥왕 등 국가 기틀을 다지고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행렬에는 당시 왜(倭)를 이끌던 주역들도 포함됐다.
"후지와키 아쓰코는 법흥 천황의 동생이었습니다. 독서를 좋아했으며, 구다라(백제)의 학자들을 불러들여 수도를 정비했습니다. 닌토쿠(仁徳) 천황은 16대 천황입니다. 덕이 매우 높은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 나니와 일대 치수 사업도 했습니다."
이어서 삼국시대 한반도에서 건너온 우리 조상들에 대한 자세한 소개가 이어졌다.
"구마 스님은 아스카시대의 인물로 도래계 야마토의 아우치 일족 출신이라 합니다. 신라 사신으로 파견돼 김춘추를 수행하는 등 국제 외교 무대에서 활약했습니다. 백제 학자 와니(王仁)는 오진 천황의 초청으로 일본으로 건너와 '논어'와 '천자문'을 전해주며 일본의 문필 행정을 담당했습니다. 나라시대 학자 요기는 와니 박사의 후손이라고 전해집니다. 그는 오진 천황 시대에 백제에서 많은 기술자를 이끌고 건너와 일본의 선진기술 보급에 힘썼습니다."
관람객들 역시 귀를 쫑긋 세우고 광장에 울려 퍼지는 사회자의 설명을 들었다. 한국인들조차 이름도 가물가물한 삼국시대의 왕과 학자, 장인의 이름이 일본 오사카 한가운데서 불리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축제를 보고 있자니 마치 한일 고대사 공부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날 주인공 역할을 맡은 이들 중에는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연예인도 있었다. 고대 닌토쿠 천황 역할을 맡은 코미디언 아오시바 후쿠 씨가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일본에서 1960~70년대 인기를 끌었던 개그 프로그램 '만화 트리오(漫画トリオ·Manga Trio)'의 한 명으로 코미디언이자 탤런트다. 아오시바 씨는 "일본에서 존경받는 닌토쿠 천황 역할을 맡아 너무 영광스럽다"며 무대인사를 했다.
일본에 문화와 문명을 전한 한반도 삼국시대 왕과 학자, 기술자들이 각자 이름이 적힌 팻말과 함께 무대 앞으로 걸어나오고 있다. 오사카=허문명 기자
고대로부터 교류에서 배우는 행사첫 번째 그룹이 무대인사를 마치고 내려가자 이내 두 번째 그룹이 "와앗소 와앗소" 하는 구령과 함께 광장으로 들어섰다. 백제 학자 아직기, 주역을 비롯해 5경을 전해준 단양이, 일본 국악이라고 할 수 있는 무악의 원조를 전수해 준 음악무용가 미마지, 나라 아스카 대불을 건립할 때 황금 300량을 주는 등 왜와 우호 관계에 힘썼던 고구려 대흥왕이 차례대로 소개됐다.
1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퍼레이드가 끝났고, 마침내 일본 황실의 환영 인사를 상징하는 대망의 피날레를 맞았다. 그 주인공은 앞서 언급한 쇼토쿠 태자였다. 그는 일본 국가 체제의 기초를 세운 사상가이자 정치가다. 불법(佛法)을 통치 이념으로 삼은 인물로 일본에서는 '성인(聖人)'으로 추앙된다. 한때(1957~1986) 100엔 지폐의 얼굴을 장식했을 만큼 일본 역사에서 차지하는 상징성도 크다.
그는 한반도와 인연이 깊다. 백제 승려 혜총이 그의 스승이었으며 고구려 승려 혜자도 그에게 큰 영향을 줬다. 매년 축제에서 태자의 역할은 오피니언 리더 가운데 한 명이 맡는다. 올해는 한국의 민속과 풍습을 일본에 널리 알린 공로로 한국에서 훈장도 받은 적이 있는 민속학자 아사쿠라 도시오 오사카민속박물관 명예교수가 그 역할을 맡았다. 그는 주황 빛깔의 화려한 의상을 입고 수염까지 붙인 채 무대에 섰다. 마치 옛날 천황이 사절단에게 깊은 환대를 하듯 깊이 고개 숙여 인사하더니 감사와 환영의 메시지를 던졌다.
"쇼토쿠 태자는 바다를 건너온 (한반도) 도래인들을 소중히 여겨 그들이 가져온 제도와 기술, 불교를 일본에 전파했습니다. 아득히 바다를 건너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한반도, 중국의 위대한 사람들이 이곳 오사카 나니와의 항구를 방문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웅대한 역사적 그림을 전개하는 것이 바로 사천왕사 왔소입니다. 1400여 년 전 그들로부터 (올해 축제가 내세운) 테마인 '고대로부터 교류에서 배우는 것'을 확인하는 행사였기를 기대합니다."
재일동포에게 용기 주기 위해 기획
‘왔소’ 축제에서 K-팝 그룹 ‘에이머스’가 공연을 하고 있다. 오사카=허문명 기자
1시간 반가량 걸린 1부 주요 행사가 끝나자 일본 중고교생들이 펼치는 전통춤 공연이 이어졌다. 이날 행사 관람객은 얼추 1000여 명은 돼 보였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즐겨 장내가 조금 흐트러졌다고 느낀 순간, 젊은이들이 갑자기 무대로 뛰어오르자 관람객들의 눈과 귀가 일제히 쏠렸다. 관객석에 있던 20대 젊은 일본 여성들은 "꺄아악" 탄성을 지르며 일제히 휴대폰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온 K-팝 그룹 '에이머스'의 공연이었다.
이들의 현란한 군무와 강렬한 열창이 이어지자 관중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왕인박사를 비롯해 행사장에서 환생한 도래인들이 하늘에서 이 장면을 내려다본다면 흐뭇하겠다는 생각에 미소가 절로 배어 나왔다.
‘왔소'는 누가, 언제, 어떻게 기획해 시작했을까. 주인공은 15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재일동포 민족 금융기관 '오사카흥운'을 세워 오사카 금융인으로 성공한 고(故) 이희건 회장과 그의 장남 이승재 부회장이다. 이 회장은 1982년 재일동포 주주들을 주축으로 신한은행을 한국에 세웠다.
축제는 본래 "일본 땅에서 멸시와 차별을 받고 살던 재일동포들이 용기를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한반도에서 건너온 도래인들이 일본이라는 나라의 기틀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려주겠다"는 취지로 출발한 행사였다. 그 뜻에 동의한 재일동포들이 십시일반으로 참여해 초기 자금 25억 엔을 모았다고 한다. 사실 도래인과 재일동포는 고향을 떠난 배경과 시대는 다르지만, 망국이나 전쟁의 아픔을 안고 제2의 고향으로 일본을 택한 점에서는 같다. 그런 점에서 '왔소'는 신(新)도래인들이 선조를 기억하는 행사라고도 할 수 있다.
축제를 직접 보고 느낀 사실이지만, 행렬 속 인물 의상이나 배경음악 선정도 매우 신중하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축제를 기획하고 준비할 당시 오사카흥운은 내부 직원들로 아예 전담 팀을 만들고, 역사 고증을 위해 김원룡 서울대 명예교수와 우에다 마사아키 교토대학 명예교수 등 최고의 한일 전문가들 자문도 받았다고 한다. 또한 '삼국사기' '일본서기' '고사기' 등 한일 역사서를 통독하고 삼국시대 음악과 춤을 재현하기 위해 서울로 가 대금과 태평소 등 전통악기까지 배웠다고 한다. 분장에 사용되는 장신구와 모자 역시 모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졌다.
축제가 열리기까지 넘어야 할 장벽도 많았다. 전례 없던 행사여서 일본 경찰의 허가를 받는 데만 2년가량 걸렸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열린 1회 행사가 크게 성공하면서 모든 고생을 보상받았다. 왔소 축제를 기록한 책 '한류축제의 재발견 왔소'는 이렇게 전한다.
"1990년 8월 19일 사천왕사로 향하는 3600명의 화려한 의상의 거대 행렬이 오사카 시민들 눈을 사로잡았다. 수십만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 말 '와앗소 와앗소'가 오사카 대로에 울려 퍼졌다. 일본 언론들은 연도에 수십만 명의 관람객들로 가득 찼다고 보도했다…거리 퍼레이드 구간인 우에혼마치에서 사천왕사까지 1.6km를 진행하는 이 퍼레이드를 보러 연도에 나온 관객이 무려 46만 명이었다. 참가자는 물론 한국인, 일본인 구분 없이 관중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여태까지 볼 수 없었던 역사 현장의 재현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일본인에게는 한국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만드는 '살아있는 역사교육의 현장'이기도 했다."
당시 오사카 마이니치방송이 퍼레이드 현장에 500m 단위로 스피커를 설치해 마치 야구 경기 중계를 하듯 생중계를 했다고 한다.
책에 소개된 일본 고대 아스카시대 연구자인 이노쿠마 가네카즈 오사카왔소 문화교류협회 이사장은 "첫 행사 때 재일동포 노부인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온갖 멸시를 받던 일본 땅에서 한반도의 춤과 음악이 펼쳐지는 것만으로도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 부인을 보면서 왔소 축제는 계속 계승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술회했다.
35년간 행사가 이어지기까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1990년대 말 버블 경제 붕괴로 금융사에 대한 관리감독이 강화되자 오사카흥운이 파산 위기에 처하면서 행사도 직격탄을 맞았다. 행사는 고사하고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제작한 각종 의상과 물품까지 폐기 처분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 것이다. 그때 나타난 귀인이 이우에 사토시 전 산요 회장이었다.
이승재 부회장과 인연이 있었던 이우에 전 회장은 평소 한일 교류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왔소 같은 문화적으로 중요한 행사가 중단돼서는 안 된다"며 축제 비품을 보관할 장소로 오사카 산요전기창고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한일 우호 관계에 관심이 많았던 그에 대한 이야기는 앞서 '신동아' 8월호(삼성에 앞섰던 산요 회장의 한마디 "우리가 진 이유를 알겠다")에 소개한 바 있다.
세월을 초월한 환대의 마음 전하다오사카흥운이 안타깝게 문을 닫은 이후 축제가 잠시 멈췄지만, 흩어졌던 퇴직직원들이 하나둘 뭉치면서 행사는 '사천왕사 시절'을 마감하고 '나니와 궁터'에서 부활했다. 축제는 2011년 산요전기가 파나소닉으로 넘어가면서 또다시 위기를 맞았지만 이우에 전 회장의 노력으로 파나소닉이 지원을 결정했고, 이희건한일교류재단·신한금융그룹·신한은행 일본 현지법인 SBJ은행 등이 나서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희건한일교류재단은 이 회장이 2008년 자신이 가진 신한은행 주식과 예금 전액을 출연해 만든 재단으로, 왔소 축제 등 한일 양국의 우호를 증진하는 다양한 사업을 후원하고 있다.
축제가 끝나고 해가 지고 있었다. 나니와 궁터의 잔디 위로도 노을이 스며들었다. 천년을 건너온 이름과 얼굴은 하나둘 자리를 떠났지만, 그들이 남긴 우정의 온기는 바람결에 오래 머물렀다. 백제에서 건너와 불교를 전하고, 기술을 나누며, 문화를 심었던 사람들…. 그들이 놓은 길 위에서 2025년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이 사물놀이와 K-팝으로 서로 함께 우정을 나누었다.
그 옛날 "(일본에 잘) 왔소"라는 따뜻한 한마디 안에는 세월을 초월한 환대의 마음이 있었다. 한일 양국의 고대인들이 "잘 왔소. 그리고 잘 가시오"라고 했던 것처럼 1400년을 넘어 이어진 인연은 여전히 우리 곁에서 새로운 봄을 준비하고 있었다. 축제가 내건 슬로건 '우정은 1400년 전 저편에서부터' 말이다.
오사카=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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